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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인 JSI파트너스 대표, 제6회 INAK사회공헌대상 프레스클럽부문 ‘시민봉사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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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9.0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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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장상인 JSI파트너스 대표이사.jpg

장상인 JSI파트너스 대표가 제6회 INAK사회공헌대상 프레스클럽부문 ‘시민봉사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대한인터넷신문협회(회장 이치수, 이하 인터넷신문협)(www.inako.org)가 주최하는 ‘제6회 INAK사회공헌대상’에서 구자근 의원이 국정혁신공헌대상을 수상했다.

 

이번 '제6회 INAK사회공헌대상' 시상식은 9월 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이사회의 긴급 결정에 따라 모든 대면행사를 8월 31일 상장•상패 전달식을 통한 비대면 대체 행사로 전환됐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전국의 각 수상자를 포함한 가족과 시상식 관계자들의 건강을 고려하고,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방침에 철저히 동참한다는 취지에서 이같이 결정됐다.

 

장상인 JSI파트너스 대표는 대우건설과 팬택계열에서 30여년 근무하는 동안 줄곧 기획ㆍ문화홍보업무를 담당하면서 불우이웃돕기ㆍ사회공헌 업무를 기획ㆍ실천했다.

 

장상인 대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중시하며 기업이 지역사회와 주민, 이해관계자 등과 공생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역량을 집중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이 재개발된 후에도 주변에 흩어져 있는 저소득층의 어린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쉼터인 ‘난곡 사랑방’을 후원하는 일에도 앞장섰던 것도 사회 공헌의 일환이다.

 

장상인 대표는 “오늘 단 한사람에게라도 기쁨을 선사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매일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는 니체(Nietzsche, 1844-1900)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실천해 왔다.

 

우리나라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홍보맨 장상인 씨. 국내 언론계와 홍보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마당발로 소문나 있다.

 

장 대표는 홍보 업무 외에 일본 영업을 담당하면서 많은 실적을 남겼다. 2008년 자신이 창업한 JSI파트너스는 한국에 진출하는 일본 기업의 마케팅과 홍보, 일본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의 마케팅과 홍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 중소기업의 막걸리를 일본에 진출시킨 것과 일본의 요리학교를 한국에 성공적으로 유치하는 일도 그의 업적이다. 그의 홍보관(弘報觀)과 일본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어 봤다.

 

▶ 직장생활 중에 30여년을 홍보업무만 담당하셨는데요. 그 시절은 ‘홍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때 아니었나요?

“제가 홍보를 처음 시작할 때는 초년병 대리였습니다. 그 때는 홍보가 독립된 분야가 아니고 어느 부서에 끼어 있었습니다. ‘홍보기획’, ‘조사홍보’, 어떤 회사는 ‘총무부’에 두기도 했습니다. 당시 대리였던 제가 ‘홍보팀’이라는 것을 회사에 건의해서 독립된 팀을 꾸렸습니다. 사원 한 명과 함께 시작했던 것입니다. 지금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출발이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부장 때는 홍보부에 20명의 직원이 있었습니다. 조직도 커지고 사람도 늘어나고 업무도 늘어나게 되었죠. 대우건설의 홍보업무와 조직을 나름대로 정착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홍보 업무의 개발을 위해서 198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유명 회사들을 벤치마킹하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 30년 홍보 일을 하시면서 성과를 거둔 일들이 많으실 텐데, 소개 좀 해주시죠.

“대우그룹 해체라는 엄청난 상황을 당했을 때, ‘대우건설 분리·매각’이라는 기사가 몇몇 매체에 났었거든요. 그 때 제가 대우건설이 수주하고 있던 국내외의 공사 리스트를 정치계, 언론계, 관계 기관에 다 보냈습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분리 매각’이라고 보도가 되면 해외에서 수주했던 대형 공사가 발주처에서 취소하자고 할 것이다. 그래서 매각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야 한다.

‘대우건설 독자 생존이다’라는 용어를 제가 만들어서, 언론에 보도되도록 뛰어다녔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우건설이 독자로 생존하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상황에서도 지금도 대우건설은 독자 생존해서 엄청난 실적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또 ‘팬택’의 경우입니다. 2006년 팬택 사태가 났었죠. 그 때도 기업개선 작업인 ‘워크아웃’의 상황에 처하게 됐습니다. 금융기관에서 지원을 해서 가능성 있는 회사를 살리려는 제도였습니다. 그때도 언론에 ‘팬택은 국민기업이다’, ‘IT업종이 살아야 한다’, ‘휴대폰이 세계적인 산업이기 때문에 살려야 한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크게 본다면 ‘리스크 매니지먼트(risk management)’ 상황에 잘 대응했던 것이지요. 결국 팬택이 ‘워크아웃’에 돌입했습니다. 이럴 때마다 홍보맨으로서의 보람을 느꼈습니다.”

 

▶ 대체로 홍보 업무가 ‘좋은 것은 알리고, 안 좋은 것은 감추는 것 즉, 은폐(隱蔽)’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은폐를 못 합니다. 은폐를 했다가는 더 많은 기사가 확대 재생산됩니다. 솔직하게 사죄를 해서 보도기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위기 발생 시 보도 기간 단축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위기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사죄한다. 둘째, 위기의 원인에 대해 초기에 규명한다. 셋째, 사실 경과에 대해 상세하게 공개한다. 넷째, 재발 방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다섯째, 책임 표명을 명확하게 한다.’입니다.

 

특히, 오늘날은 위기의 패러다임이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지 않습니까? 과거와 같은 수동적이고 안이한 방법으로는 결코 해결책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전략적이고 창의적인 위기관리(risk management) 능력이 절실한 시점에 당면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위기가 발생하면 전 조직을 망라한 ‘위기관리대책본부’를 만들어 대응에 만전을 기하는 것입니다. 둘째, 위기에 대해 폐해(弊害)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대응을 철저히 하는 것입니다. 셋째, 위기를 예측해서 미연에 방지하는 대책을 강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를 신속하게 시행하지 못하면 오보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기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먼저 제공해서 오해의 불씨가 싹트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는 것이 대책본부의 역할입니다. 사실을 감추거나 덮는다고 해서 사태가 결코 수습되지 않습니다.

 

홍보 업무는 초기에 방향을 잘 잡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홍보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회사의 최고 경영자와 언제든지 대화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 <홍보, 머리로 뛰어라.> <홍보는 위기관리다>라는 책도 내셨는데요. 계속 홍보 한 분야만 파고 드셨던 이유가 있나요?

“회사에서 다른 부서로 발령을 내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홍보라는 한 우물을 팠습니다(웃음). 부전공으로 일본 영업을 맡기도 했지만요.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홍보가 ‘경영의 정점’이라고 봅니다. 전략, 기획, 영업, 시공 등 다 중요하지만 창의적인 홍보가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은 홍보를 ‘가슴으로 뛰어라, 발로 뛰어라’고 하지만 저는 그보다 한 단계 위인 ‘머리로 뛰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코로나19가 온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잖아요. 위기는 이렇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불가항력적이라고 하지만, 순서에 입각한 관리가 가능합니다. ‘위기의 예측→미연방지→피해 국한(局限)→재발방지의 프로세스에 의해서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위기관리에 있어서는 직위에 관계없이 담당자가 본 대로 느낀 대로 직언(直言)을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상관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는 것보다 각자가 인지한 상황을 정확하게 상층부에 보고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홍보맨을 ‘기자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홍보맨은 조직의 이미지 향상을 넘어 위기를 관리하고 예측할 수 있는 능력자인 동시에 전문성이 요구되는 기술인(technician)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홍보맨이 조직이나 기업의 홍보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홍보업계에서 마당발로 소문이 나신 비결 좀 가르쳐 주세요.

“제가 실제로 많은 기자들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편집국장이 되신 분도 있고, 사장이 되신 분도 있습니다.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비결이라면 저는 오랫동안 많은 기자들과 접촉을 하면서 그들을 한 번도 싫어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자가 회사에 불리한 기사를 쓰면 통상 ‘저 친구, 안 만나!’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럴수록 두 번, 세 번 더 만났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지난번에는 미안했습니다’라고 해요. 저는 ‘괜찮아요. 다음에 잘 써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다음에 더 좋은 기사가 보도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홍보를 하면서도 기업이 잘못할 때는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경희대와 인하대에서 겸임 교수를 오랫동안 했습니다만 ‘저널리즘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일관된 생각입니다.

 

그리고 출입기자들이 다른 곳으로 출입처가 바뀌더라도 똑같이 대했습니다. 홍보 담당자는 단순히 기자들을 접대하기 보다는 정보를 많이 제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건설업이면 건설업계의 시장규모, 주택의 트렌드, 부동산 시장에 대한 내용을 공부해서 ‘요즘 부동산 추세가 이렇게 가는데, 이런 기사 한 번 써 봐요’라고 자료를 보내주면, 그 기자는 술 접대, 골프접대 보다도 훨씬 좋아합니다. 이 또한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 홍보맨으로 성공하려면, 성격도 정말 좋아야겠어요.

“그렇죠. 어떤 사람들은 기자와 인터뷰를 하다가 싸우는 경우가 있어요. 홍보맨은 기자가 까다로운 질문을 하더라도 유연하게 잘 넘기고, 모르는 것은 확실히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또 기사 하나에 지나치게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때로는 악성 기사도 있고 좋은 기사가 나가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날이면 날마디 좋은 기사만 나가려고 하는 것은 홍보에 대한 시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CEO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런 기사 나왔어?’라고 꾸중만 할 것이 아니라, ‘다음에는 잘 나오게 해봐’ 하는 이해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홍보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상부에 혼날까봐 더 많이 기사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홍보맨은 자기의 상관, CEO를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부분은 이런 점 때문에 불가항력적으로 기사가 나갈 수밖에 없고, 사실은 우리가 이것을 스스로 바꿔야 합니다.’ 하는 것을 건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내부 설득을 잘했는지 모르겠지만 비교적 스트레스 받지 않고 홍보 업무를 해왔습니다.”

 

▶ 대우건설 시절 일본에서 큰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일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1988년에 올림픽이 끝나고 아사히(朝日)신문 기자가 일본에서 서울에 취재를 왔었어요. 그가 한·중·일이 연해있는 ‘황해(Yellow Sea)’에 대한 시리즈 기사를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그의 취재를 위해 현장 안내 등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이후 제가 대우건설의 사장 및 주요 간부들과 일본 후쿠오카 영사관 준공식에 갔습니다. 영사관 공사를 대우건설과 일본 건설회사가 공동으로 시공했거든요. 제가 아사히신문의 그 기자에게 대우건설 사장의 인터뷰를 부탁했고, 그가 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인터뷰를 할 때 제가 보충 통역을 했습니다. 기자와 같이 온 통역이 건설 용어를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장을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제가 차장 때의 일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일본의 정보단지 건설(SRP)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일본 영업을 겸임하게 되었고, 캐널 시티, 후지쓰 연구소 등을 연이어 수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언론에 일본 관련 기고를 많이 하시던데 언제부터 어떤 내용을 쓰시는지요?

“2006년 4월부터 ‘월간 조선’ 인터넷 판이 생기면서 제가 전문가 칼럼니스트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쓰기 시작한 테마가 ‘장상인의 내가 본 일본, 일본인’이었습니다. 일본 사람을 만난 것과 기업의 배울 점을 중심으로 썼습니다. 자연스럽게 일본 사람과 기업의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도 독도 문제로 양국 관계가 굉장히 시끄러웠어요. 독자들로부터 댓글로 매를 많이 맞았습니다. 그래도 굽히지 않고 일본의 문화와 역사, 한류의 현장 등 다양하게 썼습니다. 일본에 출장 갈 때도 시간을 할애해서 취재를 했지만, 때로는 주말에 사비(私費)로 취재를 다녔습니다. 그렇게 쓴 내용들이 지금도 언론을 통해서 칼럼 형식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철저히 현장 중심의 이야기입니다.”

 

▶ 일본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요. 장 대표께서 쓰신 책이 기존의 책들과 다른 차별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내용 하나하나가 일본 사람들과 직접 대화한 내용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 결혼식 풍습, 음식점에 가서 그 사람들과 나눈 일상의 대화들을 중심으로 썼습니다. 또 반대로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느낀 소회(所懷)입니다. 그들과 같이 행주산성도 가고 서대문 형무소도 갔던 것입니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허물없이 나눈 현실적인 모습들을 책에 담은 것입니다.”

 

▶ 일본사람들은 흔히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하는데요. 그동안 만나신 일본의 지인들 중에 마음을 털어 놓고 지내는 사람이 있으시나요?

“사람이 살다보면 한국 사람들 중에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체적으로 일본 사람들은 사귀는데 있어서 좀 까다로운 편입니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서로를 보면서 신뢰성을 타진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사귀는데 심지어 10년이 걸린다고 할 정도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다가 바로 형님, 동생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일본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좀 느리지요. 물론 그런 단계를 지나면 많이 친해집니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은 ‘누가 소개해주었는가’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 사람은 누구 소개로 알게 되었다고 하면 굉장히 가깝게 다가와요.

 

2008년 제가 <현해탄 파고 저편에>라는 수필집의 출판 기념회를 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날 일본에서 몇 사람이 왔습니다. 그 중에 ‘와타나베 아키라’라는 사람이 축사를 했어요. 와타나베 씨에게 4남매가 있는데, 세 명의 자녀 결혼식에 저희 부부가 일본까지 갔습니다. 2013년 저희 장남이 결혼 할 때는 와타나베 씨가 주례를 서서 하객들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은 제가 30년 넘게 정말 허물없이, 가족들까지 속속들이 알고 지내는 관계입니다. 중요한 것은 와타나베 씨는 제가 일본에 가면 저를 계속 데리고 다니면서 주요 인사들을 소개를 해주는 거예요. 후쿠오카 시장, 현 지사 등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 사람이야말로 마당발이에요. 우리는 발이 넓다고 하는데, 일본은 ‘얼굴이 넓다’고 합니다. 정말 이 사람이 얼굴이 넓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제 소개를 많이 해주었어요. 심지가 곧고, 검도 4단에, 정신세계가 뚜렷하게 잡혀 있는 사람이지요. 제가 그 사람의 덕을 많이 봤습니다. 지금도 그 관계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 그렇게 매사에 정성을 다하고 열심히 사시다보면, 본인은 상당히 고단하고 피곤하시기도 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일본에서 돌발적인 혈압 상승으로 위험했던 적도 있으셨다면서요?

“2002년 어느 날의 일입니다. 제가 대우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기자 열 몇 명과 단체로 일본의 신도시에 대한 취재를 갔을 때였죠. 저는 항상 기자들과 같이 어떤 테마를 가지고 해외 취재를 많이 갔습니다. 단순한 취재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나 문화의 도입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행사를 자주 했습니다.

 

기자들과 캐널 시티 견학 중에 어지러워서 쓰러질 뻔 했습니다. 그 때 캐널시티를 개발하고 관리했던 일본인 ‘도 겐이치’ 씨가 급히 차를 몰아 자신의 친구 병원으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저의 혈압이 엄청나게 많이 올라가 있더군요. 그 사람의 이름으로 응급치료도 받고 종합 검진도 했어요. 국경을 초월한 우정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그 사람을 생명의 은인이라고 합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 오랫동안 홍보 일을 하셨던 것이 국경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로 귀결되는 것 같군요. 외국인과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언어를 잘해야 합니다. 요즘 회사 생활을 하려면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잘해야 한다고 하는데요. 홍보 업무도 마찬가지거든요. ‘글로벌 홍보’를 할 수 있는 외국어 능력을 갖춰야 하는 시대가 되었지요. 보통은 우리가 해외에서 통역을 대동하고 일을 합니다만 한계가 있습니다. 감정 전달이 안 되니까요. 언어는 단순한 의사 전달이 아니라 상대방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야 친밀도가 형성되는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홍보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2개국 이상의 언어를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굉장히 강조합니다(웃음).”

 

▶ 회사에서 오랫동안 승승장구하면서 성공하신 분인데요. 장 대표만의 경쟁력은 뭔가요?

“제가 생각할 때는 창의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성실성’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성실성이 기본이 되면 다른 것은 다 따라옵니다. 성실해야 창의력도 생겨나고, 실적도 오르고, 외국어도 발전하고, 건강도 따라오니까요.”

 

▶ 경영 마인드와 함께 문학적 감수성도 뛰어나신 것 같아요. 이 ‘감성’은 어느 분야에서나 필요한 좋은 품성인 것 같아요.

“제가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 신춘문예 당선을 목표를 하고 있다고 했더니, ‘피식’ 웃더라고요. 나이를 들어 뒤늦게 문학저널 수필부문에 ‘고독한 원혼’이라는 제목으로 수필가 등단을 했어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킨 셈이지요. 2009년에는 ‘귀천’이라는 단편으로 소설가가 되기도 했습니다. 홍보 업무 컨설팅을 위해 파푸아뉴기니 커피 농장을 취재했던 것을 계기로 2016년 장편 소설 <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을 썼습니다. 커피콩의 기나긴 여정을 닮은 우리네 인생과 사랑 이야기를 엮은 것입니다.

2018년에는 일본의 언론인 ‘이토 슌이치’ 씨와 공저로 <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이라는 수필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언어 순화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인의 자세와 한·일 양국의 사회적·문화적 차이를 담은 책입니다.”

 

▶ 홍보 업무를 하다보면 술도 많이 마시고, 바빠서 가족들의 불만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가요?

“아무래도 술자리가 많죠. 그래도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과거에는 술자리가 많고, 토요일, 일요일은 골프장에 나갔었습니다. 가족들로부터 왕따 당하기 십상이죠. 그래서 잘 참아준 아내에게 늘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취재 갈 때는 되도록 아내와 같이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요.”

 

▶ 30년 동안 홍보맨 생활을 하시고, 홍보 컨설팅 업체의 대표이사로 활동하시는 것은 변신인가요? 아니면 또 다른 도전이 있으신 건가요?

“또 다른 도전이죠. 아까 말씀드린 대로 홍보가 단순히 접대 문화이기보다는 실질적으로 정보력을 가지고 지식·성실성 등 모든 것이 집약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홍보 컨설팅이라고 하는 것은 홍보를 잘 모르는 기업들에게 제가 컨설팅을 해주는 것이죠. 전략도 짜주고, 매뉴얼도 만들어 주고, 언론에 알리는 홍보대행도 하고 있습니다. 무료는 아니고 유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도하게 받지 않고, 그 회사의 능력에 맞게 사회에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일본 사람들과 많이 교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양국의 벽을 허물어보는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에 견학을 많이 가는데, ‘와, 건물 참 잘지었다, 멋있다’하면서 겉만 보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설계해서 어떤 콘셉트로 어떻게 개발한 것인지 핵심을 모르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분을 속속들이 알게 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기업발전에 기여를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 끝으로 이 시대의 홍보 업무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한 이슈 확산이 일상화된 요즘 감출 수 있는 위기도, 보도되지 않는 위기도 없습니다. 조직원의 부적절한 행동, 공장 사고, 내부고발 등 기업이나 조직의 위기는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으니까요. 기업을 경영하다보면 잘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이 위기를 돌파하는 지름길입니다. 위기 땐 진실이 최고 무기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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