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4-22(금)

문예마을 25호 신인문학상 수상자 오재균

세월의 강을 건너서 세상을 보다 – 일천 오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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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1.1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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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균 시인>

 

오재균 시인을 만나다

문예마을 25호 문예지를 통해 시 아들아, ‘바로 걷는 게’, 그리고 무심으로 등단한 오재균 시인은 고희가 넘은 나이답게 원숙함이 느껴지는 시인이다

 

그는 신인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자 이렇게 말했다.

하얀 서리가 내린 아침 앞마당 한쪽 고욤나무 위에 까치 소리 요란하여 무슨 기쁜 소식이 오려나 생각이 들었는데 뜻밖에 등단 소식을 접하고 보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198329세부터 시 습작을 시작하여 2011년 눈병을 앓아 시 습작을 접던 중 송미순 시인님의 등단 권유로 다시 시를 쓰고 싶은 마음에 모닥불이 타올랐습니다.

 

막상 등단을 하고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려움이 앞서고 사회적 책임감이 느껴져 어깨가 무거워짐을 통감합니다. 앞으로 그동안 경험했던 삶과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를 노래하는 한 마리 방울새와 파랑새가 되겠습니다.

 

문예마을 25호 신인문학상 수상작 바로 걷는 게

 

평생 바로 걷는 게 찾아

넓은 갯벌 다 헤맸지

태초 우주 갯들에서

 

아끼고 사랑하는

고창 앞 곰소 갯벌까지

뒤지고 뒤져 찾았지만

모두 다 옆으로 라네

실망과 실망의 연속이었지

 

그러나

희망은 있을 것이여

너는 꼭 찾을 수 있다고

지나가는 갈매기 끼르륵

살며시 알려주고 가누나

 

다시 찾고 찾아

억겁세월

 

후미진 대섬 모퉁이 바위 틈새

밤게

바로 걷고 있구나

 

이 세상 사람도 언제나 밤게 되어

바위섬 바로 오를 줄 알는지

 

등단 심사평(심사위원 深幽 조 두 현)

 

매일같이 바라보는 세상도 나이에 따라서, 살아 온 환경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면,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해도 20대와 70대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다를 것이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살아오면서 축적된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일천 오재균의 글에는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오며, 태생적인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소망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어 인간의 숙명을 안고 태어난 후손을 사랑과 연민으로 감싸 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피할 수 없는 숙명이요, 짊어져야 할 짐이다.

 

그의 글 바로 걷는 게를 보자.

나 평생 바로 걷는 게 찾아/그 넓은 갯벌 다 헤맸다네.”

 

일천은 평생을 옳은 것을 찾아 세상을 돌아다녔다. 옆으로 걷는 게가 아니라, 앞으로 똑바로 걷는 게를 찾아서. 그가 잘 알고 익숙한 곰소 갯벌까지 바로 걷는 게를 찾아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그가 찾는 것이 바로 걷는 게만이었을까? 그가 진정으로 찾고 싶었던 것은 바른 생각’,‘인간 다운 인간’,‘변하지 않은 진리는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의 다른 시편 무심에서 말하고 있는 태곳적 잉태의 근본적인 이유 아니었을까?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바로 걷는 게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리라. 참고 견디며 끊임없이 인내하는 자에게만 그 진리의 빛 바로 걷는 게는 보이는 법이다. 그는 말한다. ‘희망은 있을 것이여/(중략) 갈매기/(중략) 일러주고 가누나’. 그리고 다시 찾기를 억겁세월. 마침내 그는 바로 걷는 게를 찾는다. 대명천지에서 그것을 찾은 게 아니라, 후미진 섬 바위 틈새에서 바로 걷는 게를 찾는다. 마침내 그는 그의 숙원이었던 올바른 삶, 인간다운 인간, 변하지 않는 진리를 찾은 것이다. 어쩌면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맨 것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그러한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그냥 된 것이 아니다. 그는 진흙탕에 뒹굴고, 보고 싶은 곳을 찾아 구름을 타고 떠돈다. 그런가 하면 장계수에 백골 씻고’, ‘죽음의 수의도 놓고 간다. 그리고 한 마리 황새가 되어 날아간다. 그것도 허허 웃으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년의 갈고 닦은 마음에서만 볼 수 있는 태도이다.

 

그런 일천도 인간다운 면모를 버리지 못하고 사랑과 연민을 보여 준다.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가 아닐련지. 그의 다른 시 아들아를 읽어 보자.

이 세상에 /둘도, 셋도 아닌.../하나 밖에 없는/아들아

세월의 강을 건너 오래 걸어와서 세상을 알게 된 그에게도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사랑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식에 대한 사랑이요 연민이다. 누군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있겠는가. 하물며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을 사랑한다 하지 않는가. 그는 험하게 세상을 살아왔지만 아들에게는 그러한 세상을 살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연민의 정을 갖고 보호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일천은 서리가 초가지붕을 덮고/ 달덩이 박이 쪼그라들고/ 찬 눈발이 야멸차게 날 때아들을 지켜주고 싶은 것이다. 그것도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장승처럼 변함없이 지켜주고 싶은 것이다.

 

일천은 고희를 넘어 삶을 살아왔다.

그 세월 동안 일천이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은 것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길에 온갖 기쁨과 슬픔의 가득할 것이고, 그것들에 대한 회한도 많으리라. 그 험난한 여정을 지나오는 도중에 옳은 삶의 길을 찾아보고,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으려 하는 그의 삶의 자세가 아름답다. 지금 일천이 가는 길을 우리 모두가 가고 있지만, 과연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는 태고적 잉태를 생각하고, ‘바로 걷는 게를 찾고, 수많은 역경을 견디고 나서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고 있는가.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을 온갖 어려움으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영원히 장승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넘어 가는 해가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한 자락 남기는 풍경을 우리는 일천의 시에서 본다.

 

늦게나마 문학의 길로 들어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글을 읽고 쓰는데 어찌 때가 있고 나이가 있으랴 마는 고희를 넘기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새로운 세계, 문학을 하고자 하는 용기에 커다란 박수를 보낸다.

 

 남은 시간 동안 끊임없이 문학에 도전하여 충만한 삶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심사위원 심 유 조 두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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