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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의 원인과 경과와 영향과 역사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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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4.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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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시인, 문학평론가) 대산 신상구

 

 

 

 

 

 

 

 

1. 4.19혁명의 원인과 경과

   2021년 4월 19일은 4.19혁명 제61주년이 되는 아주 뜻 깊은 역사적인 날이다.

   4.19혁명은 1960년 4월 19일부터 4월 26일까지 1주일 간 대한한국 전역에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3.15부정선거에 항거해 청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을 붕괴시킨 자유민주주의 시민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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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3.15일 투표일에 마산고등학교 학생들이 선거무효를 외치며 시위하는 모습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정권이 인권을 탄압하고 3.15 부정선거로 정권을 연장하려 하자 대구(2.28), 대전(3.8), 마산(3.15), 광주, 충주, 서울 등 대도시의 청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항거하여 대대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곤봉과 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무자비하게 학생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 학생들이 목숨을 잃고 중상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게다가 3·15 부정 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던 3·15 마산의거에 참여한 김주열 마산상고 학생이 실종된 지 27일 후인 4월 11일 아침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올라 국민들이 분노하자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어 결국 4.19혁명이 터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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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수송초등학교 학생들의 경무대 앞까지 나와 시위하는 모습

 

   4.19혁명은 전국의 초·중·고·대학생, 일반 시민, 교수 등 10여 만 명이 참여해 대대적으로 격렬한 시위를 벌여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6월 15일 제2공화국을 탄생시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나 많은 희생을 치루고 말았다. 실제로 시위 진압에 동원된 무장 경찰들과 깡패들이 최루탄을 쏘거나 곤봉을 휘두르거나 총을 발사하여 4.19혁명 과정에서 186명이 사망했고, 1500여 명이 부상을 당해 유가족들의 마음을 지금도 아프게 하고 있다. 특히 4월 18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구속된 동료 학우들의 석방과 학원 자유를 요구하며 평화시위를 벌인 후 귀가하던 고려대 학생들이 청계천 4가를 지날 때에 경찰과 모의한 반공청년단이라는 정치깡패들의 습격을 받고 중상을 입어 도로 여기저기에 쓰러지자 애국 시민들이 분노했다. 그리고 시민들의 요구가 한꺼번에 폭발하여 시위가 난무하는 바람에 사회질서가 혼란하고, 경찰서 등 관공서 건물이 파손되어 많은 피해를 입었다.


2. 4.19혁명의 영향과 역사적 평가

   청년학생들이 주도한 4.19혁명은 한국의 역사에서 학생과 일반 대중이 봉기하여 독재정권을 쓰러뜨린 아시아 최초의 사건으로 헌법 제1조 제2항에서 규정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증해 주어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민주주의 정신을 똑바로 심어주었다. 그리고 4.19혁명은 전두환 신군부의 권력에 맞선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한 1987년 6월 민주항쟁,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2017년 촛불 시민혁명 등 민주화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쳐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탄탄한 초석을 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역사학자들은 8.15 광복이 '첫 번째 해방'이었다면, 4.19혁명은 '두 번째 해방'이었다고 언급한다. 한편 어느 정치학자는 4.19혁명을 절대왕정의 구체제를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에 비유하였고, 어느 경제학자는 4.19혁명을 국가 독점 자본주의를 해체한 민주적 혁명으로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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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하야하고 청와대를 떠나 하와이로 망명길에 오른 이승만가 허정 수반

 

   4.19혁명이 전국민적 저항과 군지휘부의 무력동원 거부로 성공을 거두자 이승만 대통령이 4월 26일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을 하는 바람에 야당인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다. 반공보수가 당내의 정책이었던 민주당은 시민들의 요구사항에 부응하지 못하고 4.19혁명을 4.19사태로 저평가했다. 무엇보다 장면 내각 때 경찰 내 발포 책임자에게 무죄 선고를 하자 학생들과 시민들은 크게 실망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민주당은 장면 총리가 주도하는 신파와 윤보선 대통령이 주도하는 구파의 대립으로 여전히 정치사회적 혼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 틈을 타서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들이 일으킨 쿠데타는 5.16 혁명이라 치켜세우고 4.19혁명을 깎아내리기 위해 4.19의거라고 폄하했다고 한다.

   그래도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는 자유, 민주, 정의 등 4.19정신을 이어받는다는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3. 4.19혁명의 추모사업

   국가보훈처에서는 4.19혁명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4.19로 8길 17에 국립 4.19 민주묘지 · 기념탑 · 기념관을 조성하고, 인근의 경전철 역명을 4.19민주묘지역으로 정했다.

   4·19묘지에는 445분의 4․19혁명 민주영령들이 안장되어 있고, 1995년 4·19혁명 35주년에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그래서 4·19묘지는 민주성지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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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4.19로 8길 17에 위치한 국립 4.19 민주묘지


   4.19 운동이 크게 벌어진 곳 중 한 곳인 광주광역시에는 4.19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2012년 4월 14일 금남 56번 버스를 419번 버스로 바꾸었다.

   서울특별시 강북구에서는 2013년부터 해마다 4.19 혁명 국민문화제라는 이름으로 각종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거져 얻어지지 않고 국민들의 오랜 세월에 걸친 장렬한 투쟁과 희생으로 얻어진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는 그 안에 수많은 국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과 열정이 녹아 있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앞으로 4.19혁명 정신인 자유, 민주, 정의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확고하게 수립하기 위해서는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에서 4.19혁명 관련 민주시민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4.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4.19혁명 제61주년 기념행사 개최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4월 19일 오전 국가보훈처 주최로 서울 강북구 소재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0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해 "4·19혁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중 최초의 민주화운동이고, 전 세계 학생운동의 시작이기도 하다며, 정부는 그 의미를 특별히 기리고 4·19혁명의 정신을 인류에게 남기기 위해 2022년을 목표로 4·19혁명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추진하여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4·19혁명 민주영령들의 희생과 정신을 세계인과 함께 계승하고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하반기로 연기된 ‘4·19혁명 국민문화제'가 60주년의 의미에 걸맞은 국민 모두의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국가보훈처는 1960년 민중의 비폭력 저항으로 한국 민주주의 싹을 틔운 시민혁명인 '제61주년 4·19혁명 기념식'을 4월 19일 오전 10시 국립4·19민주묘지에서 개최했다.

4·19혁명 기념식은 '새 아침, 민주주의를 노래하다'라는 주제로 정부 주요인사, 4·19혁명 유공자 및 유족 등 99명이 참석한 가운데 헌화·분향, 국민의례, 경과보고, 기념사, 청년의 다짐, 기념공연, '4·19의 노래' 제창 등의 순으로 40분간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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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4.19혁명 61주년을 맞이하여 2021년 4월 19일 오전 국립 4·19민 주묘지를 찾아 경건하게 참배하고 있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은 4·19혁명 제61주년을 맞아 4월 19일 오전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민주묘지를 참배하며 민주영령의 희생과 헌신을 추모했다. 그리고 참배 소감으로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4·19민주묘지 참배는 취임 후 이번이 세 번째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듬해인 2018년 첫 참배 이후, 지난해 제60주년 기념식 참석을 계기로 참배한 바 있다.

문대통령은 2021년 4월 19일 오전 국립 4·19민주묘지 참배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4·19 혁명 61주년을 맞아'라는 글에서 1960년 4월 19일은 "목숨보다 뜨거운 열망으로 우리 가슴 깊이 민주주의를 심었던 날"이라며 "4·19 혁명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굳건한 뿌리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19 혁명의 주역들께 김수영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다시 바친다"며 '푸른 하늘을'의 일부를 인용했다.


5. 허태정 대전광역시장의 4.19혁명 제61주년 기념행사 참여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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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정 대전광역시장이 4월 19일 오전 중동 목척교 4·19혁명 진원지 표지석을 찾아 헌화하고 있는 모습


허태정 대전광역시장은 4.19혁명 61주년을 맞아 오전 동구 중동 목척교에서 (사)대전세종충남4.19혁명회(회장 최영상) 회원들과 함께 4·19혁명 진원지 표지석을 찾아 헌화하고, "4.19혁명은 독재세력을 민주시민의 힘으로 몰아내어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허 시장은 4월 19일 열린 주간업무회의에서 "대전의 3·8 민주의거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한 가운데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역사성과 상징성이 크다"며 "4·19 혁명이 3·8 민주의거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기념사업에 잘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고문헌>

1. 김운태,한국정치론, 박영사, 2002.2.15.

2. 이극찬,정치학, 법문사, 2010.2.20.

3. 윤석연,4.19 혁명, 한겨레틴틴, 2010.12.15.

4. 박세영,처음 배우는 4.19 혁명과 민주주의, 북멘토, 2020.4.6.

5. 이찬우, “국가보훈처 제61주년 4·19혁명 기념식 개최”, 세이프타임즈, 2021.4.16일자.

6. 이원구, “허태정 대전시장, 4·19혁명 진원지 표지석 헌화”, 백제뉴스, 2021.4.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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